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읍 화물차 사무실 살인사건 (문단 편집) === 수상한 남편 === [[2009년]] [[4월 20일]], [[전라북도]] [[정읍시]] 공평동에 있는 이삿짐 센터인 동방화물[* 이로 인해 언론에서는 [[2020년]] [[1월]] 성치영이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공개수배 전단에 실림과 함께 이 사건이 재조명되며 '''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알려졌다. 또는 '''정읍 화물차 차고지 살인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9년]] 실종으로 최초 보도 당시에는 시기동으로 보도된 바 있다.]에서 화물차 기사 일을 하는 성치영(당시 38세)[* [[1971년]] 전북 부안군 줄포면 출생. 2021년 하반기까지의 패턴 상으로 하반기 수배전단에서 나이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상반기 생이 확실하며, 성치영이 수배 전단에 실리기 전인 [[2016년]]에 기사가 나온 시점의 나이와 사건 당시 나이가 혼동되어 한동안 [[1964년]]생(당시 45세)으로 잘못 기재되기도 했다.]은 [[전주지방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가 파산 선고를 받을만큼 빚을 지게 된 이유는 순전히 [[도박]]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파산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건 당시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도박판에서 속칭 전주(錢主)[* 도박판에서 돈을 대주는 사람을 말한다.] 역할을 하던 사채업자[* 사건 초기 기사에는 직원(회사 동료)으로 잘못 보도되었다.] 이 모 씨였다. 이 모 씨는 성치영이 다니는 화물차 회사 대표의 동생이었는데 이따금 사무실에 들러 기사들에게 도박 자금을 꿔주던 사람이었다. 파산 전날이자 사건 전날인 [[4월 19일]]에도 성치영은 한 푼이라도 따자는 심정으로 이 씨에게 50만 원을 빌렸다고 한다. 성치영은 전주에 있는 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5시 20분에 정읍에 도착했다고 아내[* [[1973년]]생.][* 한국일보에서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사건 당일이 부인의 생일이었지만, 상환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불어난데다 딸이 3명이나 있어 파산밖에는 길이 없던 상황이었다고 한다.]에게 알렸다. 그런데 성치영이 도착을 알린지 3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귀가하지 않자, 성치영의 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8시 30분 쯤에 화물차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실내 전등이 꺼져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5시 20분에 정읍에 왔다는 성치영은 그로부터 4시간이 한참 넘은 뒤인 밤 9시 30분에 집에 돌아왔는데, 몰골이 이상했다. 머리카락과 바지가 흥건히 젖은데다 옷도 흙투성이여서 마치 흙탕물에서 구른 사람 같았다. 게다가 손등에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성치영은 단지 넘어져서 다친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는 줄 알았던 성치영은 집에 돌아온 지 5시간 후인 이튿날 새벽 2시 반에 또 갑자기 사라졌다. 처음 보는 흰색 [[르노삼성 SM3]][* 당시 차량번호는 55저 6509.][* 사건 초기 기사에 해당 차량이 피해자 이 모 씨 명의의 차량으로 확인되었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 남편은 1시간 쯤 뒤에 들어와 다시 잠을 청했다. 비슷한 시각에 화물차 회사 대표(피해자 이 모 씨의 형, 당시 49세)[* [[1960년]]생.]는 제수(남동생의 아내)와 함께 사라진 동생을 찾으러 다녔다. 4월 20일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 동생이 휴대폰을 꺼둔 채[* 사건 당일 오후 9시 30분에 휴대폰의 전원이 꺼진 것이 사무실 인근 기지국에서 감지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8시에 경찰이 탐문을 벌여 피해자 이 모 씨가 혼자 일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집과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회사 대표인 이 모 씨의 형은 [[4월 21일]] 오전 10시경 제수(피해자 이 모 씨의 아내)로부터 '''애들 아빠가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오지 않아 걱정된다'''는 연락을 받고 제수와 함께 정읍 상동지구대를 찾아가 동생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동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기차역 주변 여관과 주차장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고, 사무실로 이동해 내부를 유심히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안은 종이가 흩어져 있고 냉장고도 열려있을 뿐 아니라 바닥 곳곳에 혈흔이 떨어져 있었고 사무실 내 화장실에도 혈흔이 곳곳에 있었다. 바깥(사무실 외부쪽 물웅덩이)에도 핏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당시 혈흔이 발견된 곳은 총 7곳으로, 출입문 손잡이, 내실 바닥 2곳, 의자, 웅덩이, 화장실 스위치, 세면대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는 단순 실종이 아니라 누군가가 동생을 해코지했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상술한 내용들을 종합해보자면 피해자 이 모 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은 오후 8시였으며, 성치영의 아내가 오후 8시 30분에 화물차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 30분의 시간 사이에 사무실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핏자국들을 확인한 경찰은 곧바로 실종 사건에서 강력 사건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성치영을 지목했다. 그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살인]] 후 시체 유기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 후술하겠지만 사건 이후 '''약 5년 뒤에 그 추정대로 시체가 유기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되는 4월 21일 오전 2시 30분부터 오전 4시까지 1시간 30분 동안 그와 아내 A씨의 진술이 엇갈린 탓이다. 성치영은 집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고 했지만 아내는 남편이 차를 타고 나갔다고 한 것이 상반된 진술이다.[* 만약에 성치영의 진술이 사실이면 성치영은 자다 말고 술을 먹으러 나갔다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차는 정읍 아산병원에 세워놓고 그대로 갔다는 말이 된다. 즉 당시 성치영의 이동 경로는 집에서 SM3를 몰고 정읍 아산병원으로 먼저 갔고, 그 다음에 집 근처에 위치한 어떤 음식점이나 주점으로 걸어서 이동해 맥주를 마신 후 집으로 이동한 것이 된다.] 한편, 피해자 이 모 씨의 차량은 번호판이 바뀐 채 정읍 아산병원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차의 운전석 문 손잡이와 운전대에서 성치영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경찰에서는 성치영이 이 모 씨와 빚 문제로 다투다 이 모 씨를 살해했고 시체를 어딘가에 유기했으며 도주 경로를 들키지 않게 하려고 이 모 씨의 차에 다른 차 번호판까지 훔쳐 달았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 모 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무죄 추정의 원칙|아무리 그가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어도 살인범으로 체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경찰은 이 모 씨의 시신을 수색하는데 주력했지만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